핀테크라는 말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금융과 기술의 융합이라고 쉽게 이해 가능하며, 그렇게 탄생된 서비스 형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기술을 기반으로 금융서비스에 뛰어드는 비바 리퍼블리카(토스), 레이니스트(뱅크 샐러드) 등을 우리는 '핀테크 기업'이라고 부른다. 금융당국에서도 공개 보고서에서 핀테크를 '금융플랫폼', '금융데이터 분석 서비스', '결제 및 송금 서비스', '금융 소프트웨어 서비스'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테크핀이라는 말은 조금 생소하지만 요즘 자주 인용된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2016년에 처음 꺼낸 후 금융보안원 등에서 언급하고, KDB 연구소 등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꽤나 알려졌다. 그리고 핀테크와의 애매만 차이로 인해 많은 미래 학자, 금융 엔지니어, 금융업 종사자들로 하여금 그 의미 차이에 대해 고찰하게 만들었다.
핀테크와 테크핀은 해외에선 좀 더 구분이 쉬우나 국내에선 의미 파악이 쉽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국내의 금융IT가 애초에 테크(Tech)를 많이 도입하고 있었던 선진적인 구조였기도 하고, 규제에 발목잡혀 있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설명하자면,
핀테크는 금융업에 여러 IT 기술들이 융합되고, 기존 금융업이 재편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일컷는 말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 여러 서비스들을 포괄한다. 해외에서 국내로 '핀테크'라는 말이 넘어왔을 때 우리는 그 말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모바일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고, 생체 인증을 하고, 간편하게 송금을 하고, 금융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한다고..?"
"그게 뭐?"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핀테크 서비스는 한국에서 이미 대중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금융업의 역사가 더 깊고, 한국만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지 않았던 해외에서 뒤늦게 금융+IT가 융합되면서 생겨난 말이었던 것이다.
물론 블록체인,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국내에서도 기존에 없던 서비스들이 생겨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은 토스나 뱅크샐러드, 카카오 같은 스타트업이나 IT기업들에 의해 생겨났다. 대형 금융회사들도 챗봇이나 블록체인 서비스 등을 도입하긴 하였지만 그건 기존에 있던 스마트 금융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졌고, 우리는 토스나 뱅크샐러드를 '핀테크'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실 그게 '테크핀'일 수도 있다. 핀테크가 금융에서 시작한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이라면, 테크핀은 기술에서 시작한 금융서비스로 설명될 수 있다. 즉 기존 제도권 금융회사들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토스나 뱅크샐러드도 이에 속한다. 은행들이 만든 서비스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테크핀이라는 말이 와닿지 않는 것일까? 간편 송금, 간편 결제, 인슈어 테크, 마이데이터 서비스 까지. 다 그냥 흔한 핀테크 서비스로 보인다. 좀 더 살펴보자.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핀테크는 기존의 금융시스템 기반 위에 ICT를 접목시킨 서비스인 반면에 테크핀은 ICT 바탕 위에 금융시스템을 구축한 서비스”이라고 말했다. 'IT기업인 우리가 금융을 주도하겠다'라는 포부가 담긴 말이다. 이런 태생적인 배경 덕에, 테크핀은 종종 거대 IT기업, 즉 빅테크 기업의 금융업 진출과 연관지어서 설명된다. 아마존, 구글, 알리바바, 애플 등이다. 국내에선 카카오, 네이버 등이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의 금융서비스를 '테크핀'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과연 카카오, 네이버에서 하는 금융 서비스들이 테크핀일까? 네이버 페이, 네이버 파이낸셜, 카카오 페이, 카카오 뱅크, 카카오 증권 등. 영세 스타트업 서비스들에 비하면 훨씬 뛰어나긴 하지만 그래도 별로 새로울 것 없는 핀테크 서비스이다. 좀 더 깔끔하고 있어보일 뿐이다.
진정한 '테크핀'이 되기 위해선 마윈 회장의 말대로 'ICT 바탕 위에서 금융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의 핀테크 서비스가 테크핀이라는 말을 갖다붙이기 민망한 것은 한국 특유의 제도권 중심의 금융 산업구조 때문이다. 규제를 목적으로한 수많은 법률들. 허가 기반의 금융업·전자금융업, 금융당국에서 나서서 통제하는 진입장벽. 그들만의 리그. 모든 핀테크도 결국엔 제도권 은행, 금융투자, 보험, 카드 그 짜여진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현실에서 '테크핀'이란 있을 수 없다.
금융당국에서 야심차게 서비스하는 규제 샌드박스, 혁신금융서비스, 마이데이터, 오픈뱅킹 이 모든 것이 결국은 기존 금융시스템을 화이트리스트 기반으로 조금씩 열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핀테크는 기존의 금융시스템을 벗어날 수 없다. 타다의 사례처럼 금융에서도 수많은 아이디어와 수많은 시도들이 있겠지만 결국엔 규제의 벽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저 혁신금융서비스라는 빛 좋은 개살구로 포장되어 시범서비스나 PoC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한국의 금융시스템을 비판하고자 글을 작성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핀테크와 테크핀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런 한국의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남들보다 한발짝 앞서 도입된 핀테크, 그리고 다가갈 수 없는 테크핀. 그 사이 어디쯤이 대한민국의 금융시스템의 현실이고, 이 현실 속에서는 저 두 단어의 구분이 어려울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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